
국악의 팬덤화, 입덕의 시대
2024년 7월 국립극장 《창(唱): 꿈꾸다》가 예매 시작 1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2023년 뮤지컬 〈곤 투모로우〉에서 고종을 연기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배우 김준수가 주연인 공연으로 이 콘서트에서는 판소리뿐 아니라 발라드, 재즈, 록 편곡까지 넘나들며 국악의 ‘장르 허물기’에 도전했고, “국악도 멜론 플레이리스트에 담길 수 있다”는 선언으로 많은 MZ 청중의 공감을 샀다. 그의 팬클럽은 국립극장 공연마다 커피와 굿즈, 전통 신을 선물하며 서포트를 이어갔다. 이들이 선물한 두루마기와 태사혜를 입은 채 무대에 오르는 모습은 MZ 청중이 전통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국악의 팬문화는 김준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배우 김수인의 팬들은 연남동 카페를 사흘간 대관해 생일 카페를 열었고, 공연일마다 포토존을 만들어 ‘입덕의 성지’로 만들고 있다. 이처럼 전통예술계의 티켓 파워는 빠르게 변화 중이다. 국립창극단 공연의 2030 관객 비율은 2010년대 초반 10%에서 2024년 30%를 돌파했다. 이제는 공연 캐스팅 지연에 항의가 올라오고, 영어 자막의 띄어쓰기 오류를 팬이 직접 찾아내 수정을 요청하는 시대다.
무대 밖 열기만큼이나 공연 자체도 달라지고 있다. 창극 〈만신: 페이퍼 샤먼〉은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을 연출로 기용하며 전통 서사의 현대화를 시도했고, 창극 〈패왕별희〉는 경극의 시각미와 창극의 내러티브를 결합했다. 소리극 〈왔소! 배뱅〉은 ‘배뱅이굿’을 창극 형식으로 재구성해 30대 관객 비율이 절반에 달했고, 5회 앙코르 공연도 전석 매진됐다. 이제 창극 무대가 더는 ‘어르신만의 자리’가 아니다.

전통이 지금 여기의 이야기로 다가올 때
국악은 극장 플랫폼에서만 사랑받는 게 아니다. 엄청난 히트를 했던 이날치밴드의 ‘범 내려온다’는 물론이고 무용수 경연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에서 한국무용 전공자가 우승을 차지하고, 여성국극을 다룬 드라마 〈정년이〉가 시청률 16.5%를 기록하며 전통예술 전반에 관심이 고조됐다. 국악 소녀 송소희의 〈not a dream〉 등 대중음악과 국악의 결합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대중문화 평론가들은 이 같은 흐름을 “전통이 ‘나만 아는 멋’이 되는 시대”라고 분석한다. 국립국악원 이승재 관객개발팀장은 “전통을 향유하는 것이 요즘 2030에게는 취향의 확장으로 받아들여진다”라고 설명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야외 콘서트 〈애주가〉는 2030 예매 비율이 44%에 이르렀고, 게임음악을 국악으로 재해석한 〈음악 오디세이: 천하제일상〉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입문용 국악 공연’으로 불린다. 물론 이런 흐름은 인물 팬덤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구조적 과제가 남는다. 하지만 국악이 ‘이해하는 음악’에서 ‘즐기는 음악’으로, ‘나만의 취향’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현재의 변화는 긍정적이다.
전통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무대 위에서, 거리의 카페에서, 플레이리스트 속에서 숨 쉬는 생동감 있는 오늘의 문화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전통을 향한 새로운 감각으로 노력하는 아티스트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제대로 즐기는 관객이 있다.
글, 자료 편집실 <국가유산청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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