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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위에

시골, 나를 살게한 선택

by 해바라기 님의 블로그 2025. 4. 30.

1. 돈 없는 사람의 시골살이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 돌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그때까지, 숨 쉬듯 돈이 나간다. 버스 한 번, 커피 한 잔, 간단한 병원 진료조차도 부담이 된다. 돈이 없으면 친구 만나기도, 몸을 쉬는 것도 어렵다. 가난은 곧 고립이 되었고, 도시에서의 가난은 유난히 쓸쓸했다.

나는 한때 ‘잘 나갔다’. 20대에서 60대까지 누구에게나 뒤지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남편은 안정된 직장을 다녔고, 나는 내 자리에서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인생은 한순간에 흐름을 바꿨다. IMF. 그 거대한 파도는 우리 가족도 예외로 두지 않았다.

남편은 직장을 나왔고, 생계를 위해 음식점을 시작했다. 10년간,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했다. 하지만 결국, 손에 남은 건 탈진한 몸과 갚아야 할 빚뿐이었다. 마지막 남은 재산, 서울의 집을 팔아 빚을 갚고 나니 남은 돈은 2천만 원. 서울에서의 삶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그때, 시골이 나를 불렀다. 아니, 사실 시골밖에 갈 데가 없었다. 지인의 소개로 한 시골 마을의 무허가 빈집을 보게 되었다. 500만 원. 집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곳이었다. 마당엔 잡초가 우거졌고, 지붕은 바람 불면 떨어질 듯했다. 담장은 금이 가 있었고, 수도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 집을 샀다. 땅은 종중 소유였지만 도지료는 연 10만 원이면 충분했다. 게다가 집 앞엔 80평 남짓한 텃밭까지 딸려 있었다. 누군가에겐 흉물일지 몰라도, 나에겐 그것이 저택이었다.


나는 시골살이를 꿈꿔본 적이 없었다. 살아보지도 않았고, 농사도 몰랐다. 하지만 ‘돈이 없다’는 건 때로 사람을 용감하게 만든다. 어차피 갈 곳이 없다면, 어디든 살아야 한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없는 채로 시골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돈은 여전히 없었지만, 굶지는 않았다. 웃을 일도 생겼고, 하루하루 흘린 땀이 나를 살리는 걸 느꼈다. 도시에서의 가난은 벽처럼 나를 가뒀지만, 시골의 가난은 흙처럼 나를 품었다.

이 글은, 그렇게 시작된 나의 15년 시골살이에 대한 기록이다.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하기엔 부끄러운 삶이지만, 그럼에도 살아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자랑스럽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혹시 과거의 나처럼 길을 잃고 있다면, 이 이야기가 작게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때로는, 아주 작고 외진 길이 삶을 바꾸기도 하니까.



2. 시골살이, 낭만보다는 생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