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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위에

가장 오래된 기록 돌속에 새기다

by 해바라기 님의 블로그 2025. 6. 3.

돌 앞에 선 열세 살
열세 살, 또래들은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갈 나이에 이재순 선생은 돌을 깎고 있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학교를 쉬던 어느 날, 가족의 권유로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석조 인생의 시작이었다. 팽이를 깎고, 연을 날리며 손재주를 키워 온 소년에게 돌은 낯설지 않은 재료였다.

“처음에는 어깨너머로 배우고 치석 작업을 했습니다. 돌의 표면을 다듬는 일이었죠. 그때는 기술보다 태도를 배웠어요. 돌 앞에서는 정직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열다섯 무렵, 그는 형과 함께 서울 창동에 있던 김부관 선생의 작업장으로 향했다. 6개월여 동안 돌을 다듬는 기본기를 배웠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손이 빠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인정을 받으니까 오히려 시기받고 내쳐지기도 했다. 그 일이 그에겐 아팠던 기억이다. 하지만 방황하던 그 시절, 우연히 찾아간 경주의 석굴암 앞에서 마음이 달라졌다.

“석굴암 본존불을 처음 봤을 때 사람이 한 게 아니라 신이 다듬은 것 같았어요. 설명할 수 없는 경외감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때 결심했습니다. 나도 이 길을 가야겠다고요.”


그 후 그는 국내 석조 조각의 대가인 김진영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웠다. 그 시절 그는 조각과 기술만 배운 것은 아니다. 조각을 둘러싼 불교 이야기와 사상, 철학까지도 배워 나갔다. 그렇게 7년 여의 시간이 흐르고 그의 손은 마침내 전체 조각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불과 스물두 살 때 일이었다.
우리 돌, 우리 손, 우리 방식
“일제강점기 이후 석조 기술은 일본식으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정제되고 날카롭긴 하지만, 우리 손에는 맞지 않지요. 우리는 둥글고 수더분한 걸 좋아합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정서요.” 그는 한국 석조의 미감을 석굴암 본존불의 얼굴과 그 뒤를 둘러싼 광배로 설명한다. “전면은 곱고 정제되어 있지만, 뒷면은 다소 거칠죠. 그 대비 속에 미감이 있습니다. 그게 한국의 돌이에요.”

그는 이 철학을 실천하며 수많은 복원 현장을 지켰다. 미륵사지 석탑, 숭례문, 경천사지 십층석탑 등. 2005년에는 대만 자항기념당 좌불 조성도 맡아 석굴암 본존불보다 1.7배 큰 불상을 3년에 걸쳐 완성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티베트를 돌며 다양한 석조물을 만나 연구하면서, 그에게는 우리 돌로도 세계적인 조형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런 그의 작업실 한편에는 50대에 시작해 20년 가까이 시간을 들여 다듬고 있는 대표작 한 점이 놓여 있다.

“누가 가져가겠다고 하셔도 아직은 제 곁에 두고 싶어요. 지금도 다듬고, 다시 보고 또 만지며 배우는 중 입니다.” 그에게 돌을 깎는다는 건 모양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시간을 새기고 마음을 남기는 일이다.

다음 세대에게 돌을 건네는 일
“우리가 외국에 가면 로마의 유적, 파리의 대성당을 보지 않습니까? 우리도 있어요. 석굴암, 미륵사지 같은 문화유산, 그리고 곳곳의 성곽들까지. 크고 오래된 것들은 거의 다 돌입니다. 그런 걸 지켜내는 사람이 필요하지요.”

이재순 장인은 좋은 돌을 보고 형상을 떠올리기도 하고, 먼저 밑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맞는 돌을 찾기도 한다. 쐐기로 돌을 가르고, 매와 정으로 형태를 잡고, 그 안에서 우리 전통의 미와 자신만의 철학을 함께 찾아낸다. 그는 그의 이런 철학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개인 박물관 조성을 준비 중이다. 그동안 해 온 국가유산 복원 작업과 창작 조형물, 전통 기법을 직접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돌을 닦는 일입니다. 그건 보이진 않지만, 마음이 드러나는 과정이에요. 마치 돌 속에 묻힌 시간을 하나하나 닦아내는 것처럼요.”

이야기를 마친 그는 다시 망치를 들었다. 큰 돌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은 조용했지만 단단했다. 흘러간 시간 위에 다시 새로운 시간을 쌓는 일. 그 일에 쉼은 없고, 완성도 없다. 그의 시간은 오늘도 돌 위에 고요히 새겨진다.

국가무형유산 석장
‘석장(石匠)’은 석조물을 제작하는 장인으로 주로 사찰이나 궁궐 등에 남아 있는 불상, 석탑, 석교 등이 이들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다채로운 석조문화유산이 전해지고 있어 우리나라의 석조물 제작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석공예의 재료는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화강암을 비롯하여 납석과 청석, 대리석 등이 활용되고 있다. 전통적인 석장들은 망치, 정 등 수공구를 사용하여 돌이라는 단단한 물질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수준 높은 석조문화를 탄생시키고 발전시켜 왔다.

글 최대규 | 사진 김성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