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 정원, 한 평 텃밭

흙을 만지는 일은 묘하게 마음을 다독여 준다

해바라기 님의 블로그 2025. 5. 1. 11:39

봄이 되면 시골은 분주해진다.
땅이 녹고, 볕이 들고, 바람이 바뀌면, 누구랄 것 없이 삽부터 든다.
하지만 나에겐 그 모든 게 처음이었다.
삽을 어떻게 쥐어야 하는지도, 씨앗을 언제 뿌려야 하는지도 몰랐다.

일단 이장님께 부탁드려 밭을 갈아달라고 했다.
그 일을 ‘경운’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밭에 이랑을 만들고, 두둑을 세운 다음, 비닐을 씌우는 방법은 동네 어르신들께 하나하나 배웠다.
꽃샘추위가 있으니 뿌리식물은 4월 5일쯤, 열매식물은 5월 5일쯤 심는다는 것도.
외워두면 좋다며, 어르신들이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첫 작물로 감자를 심어보기로 했다.
어르신들이 심는 모습을 보고 곁눈질로 따라 했다.
가물어 보이니 물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물 주기 시작하면 계속 줘야 한다”고 하신다.
차라리 자연에 맡기면 알아서 큰다고.
지나가다 내 실수를 보신 어르신이 웃으며 한 말씀 던지신다.

“공책이랑 연필은 있어도, 쓸 줄을 모르니 원…”

글을 배운 적 없다는 80이 넘은 할머니의 그 말이
왠지 마음 깊이 울렸다.
그 한마디 속엔, 평생 땅을 일구며 체득한 지혜와 겸손이 담겨 있었다.

나는 농부로 살아온 분들께 자연의 이치를 배워간다.
도시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사먹던 먹거리들이,
이제는 씨앗 하나 심을 때마다 수많은 생각을 불러온다.

흙을 만지는 일은 묘하게 마음을 다독여준다.
삶이란 게 뜻대로 되지 않아도, 땅은 참 솔직하다.
씨를 심은 만큼 자라고, 돌본 만큼 열매를 맺는다.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농작물이 큰다”는 말은 정말 진리였다.

그해의 봄 농사는 내 인생 첫 농사였다.
비록 서툴렀지만, 그 밭에서 나는
삶을, 그리고 나 자신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