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백일홍에 반하다



나는 매년 백일홍을 심는다. 여름 꽃으로는 최고!
여름 한복판, 햇살이 가장 눈부시고 뜨거울 때, 백일홍은 조용히 피어난다. 한두 송이 수줍게 피었다가, 이내 나무 전체를 뒤덮을 듯 붉고 분홍빛 꽃들을 가득 피워낸다. 백일 동안이나 꽃이 진득하게 피어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 백일홍(百日紅). 그 이름만으로도 한 계절을 꿰차고 사는 꽃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백일홍은 화려하지만 요란하지 않다. 화려하되, 정직하다. 강한 햇살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내며 제 몸을 열어젖히는 꽃. 그래서일까. 백일홍 앞에서는 괜히 마음이 뜨거워진다. 쉽게 시들어버리는 요즘 마음들과는 달리, 오래도록 피어 있으려는 의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백일홍을 볼 때마다 누군가를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의 뒷모습을 떠올린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피어나는 일, 제자리를 지키며 시간을 통과하는 일. 그것은 마치 말없이 기다리는 사랑처럼 절제된 강인함이 있다. 시끌벅적한 여름 풍경 속에서도 백일홍은 고요히, 그리고 묵묵히 피어난다. 자신이 피어야 할 자리를 알고, 자신이 머물러야 할 시간을 아는 듯이.
백일홍은 성급하지 않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듯 피어나고, 그렇게 피어난 하루들이 모여 백일이 된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어떤 날은 더디고, 어떤 날은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도,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다 보면 마침내는 하나의 계절이 피어난다. 그러니 지루해 보이는 날들이라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나는 백일홍을 볼 때마다 새로이 하게 된다.
한여름의 햇살을 그대로 닮은 백일홍꽃. 그 꽃이 피는 동안은, 나도 조금 더 뜨겁게, 조금 더 오래 머물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피는 데에 시간을 들이는 꽃처럼, 나도 내 마음의 어떤 풍경을 천천히 피워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