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내게 가르쳐주는 것들
오늘은 아침부터 텃밭에서 하루를 보냈다. 50평이 넘는 땅에 멀칭비닐을 씌우고, 고추 모종 100개, 토마토 모종 100개를 심었다. 틈틈이 쌈 채소 씨앗도 뿌렸다. 몸은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가벼웠다. 바람이 좋았고, 흙 냄새도 나쁘지 않았다. 초보 농부라 서툴기만 했지만, 그래도 해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자 슬슬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어깨는 욱신거리고, 허리는 쑤시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뻐근하다. 그날은 견딜 만했는데, 아픔은 꼭 시간을 두고 찾아온다. 땅이 그렇게 가르쳐줬다. 고통도 기다렸다가 온다고. 수확의 기쁨을 맛보기도 전에 이런 고통이 먼저 올 줄은 몰랐다.
풀을 뽑는 시간엔 생각이 많아진다. 잡초 하나하나 뽑을 때마다 묘하게 슬픈 마음이 든다. 이건 슬픔일까, 회한일까. 지나간 시간 속에 미처 뽑지 못한 내 안의 무언가가 자꾸 떠오른다. 땅을 만지면서 마음도 함께 파헤쳐진다.
농사는 결국 몸을 구부리는 일이라는 걸, 오늘 뼈저리게 느꼈다.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씨앗을 심을 수 없고, 땅은 그런 농부의 자세를 본다. 교만한 자에겐 품을 열지 않는다. 겸손해야 한다. 땅은 모든 걸 주면서도 한마디 자랑도 하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에서, 조용히 생명을 키워낸다.
땅은 참 많은 걸 가르쳐준다. 말없이 주고, 다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오늘 배운 건 그거다. 기다림, 겸손, 그리고 묵묵함. 농부가 되는 길은 몸이 아니라 마음부터 내려놓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아침 일찍 밭에 나갔다. 땀이 나기 전에 바람부터 맞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한참 잡초를 뽑다가 문득, 내가 왜 이걸 뽑고 있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잡초라고 다 나쁜 건 아닐 텐데. 걔들도 그냥 자기 자리에 뿌리내리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벌레도 마찬가지. 해충이라고, 작물을 갉아먹는다고 미워하지만,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잡초를 뽑다가 멈칫했다. 이걸 뽑아내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얘들도 그냥 자기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벌레도 마찬가지다. 누가 해충이라 이름 붙였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들도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걸 죽이고 뽑아내는 건 결국 농부인 나의 선택이다. 땅은 그런 판단을 하지 않는다. 누구든, 무엇이든 다 받아준다.
계절이 바뀌면 땅은 스스로 문을 연다. 겨울엔 단단히 닫고 세상 모든 존재에게 휴식을 주고, 봄이 되면 따뜻한 기운을 안에서부터 끌어올려 생명을 품는다. 그 타이밍이 얼마나 정확한지 늘 감탄스럽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된다. 자연이란 그런 거다. 억지로 되지 않고, 저절로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연스러움이고, 우주의 진리다.
밭에서 흙을 만지다 보면 그 진리를 조금씩 느끼게 된다.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손에 흙 묻히며 깨닫게 되는 것들. 그런 게 진짜 배움이고, 진짜 공부다.
특히 봄날, 흑갈색으로 펼쳐진 드넓은 땅을 보면 마음이 참 푸근해진다.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고된 노동이 기다리고 있는 밭인데도, 마주하는 순간엔 그냥 좋다. 말없이 다 품어주는 그 너그러움 때문인지 ㅇ오른다. 땅을 밟고 땀을 흘리고 나면 몸이 달라진다. 숨이 깊어지고, 마음이 잔잔해진다. 땅은 고되지만, 그만큼 주는 게 있다. 고통 뒤에 오는 기쁨, 그건 땅이 주는 선물이다. 땅은 가르쳐준다. 땅을 밟으며 하늘을 배우고, 도를 익히고, 자연을 알아간다. 그래서 땅은 나의 스승이다.